“내 차는 물 뿌려도 안 꺼진다”도심 주차장 화재, 스프링클러 기준은 왜 ‘과거’에 머무나

기획특집 | 도시 안전 진단주차장 화재01

부제: 전기차 시대, ‘준비작동식’ 밸브의 한계와 기계식 주차장의 사각지대

 요약: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온도가 순식간에 1,000도 이상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차장 소방 설비 기준은 여전히 30년 전 내연기관차 화재 진압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을 찔끔 뿌리는 현재의 스프링클러로는 전기차의 배터리 열기를 식히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동파 방지를 이유로 설치된 ‘준비작동식(Pre-action)’ 스프링클러가 화재 감지 지연이나 오작동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 리포트에서는 차량 종류(전기차 vs 내연차)와 주차장 형태(자주식 vs 기계식)에 따라 달라져야만 하는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의 허점을 파헤치고,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전기차 전용 소방 안전 대책’을 제시합니다.

1. 프롤로그: 지하 3층, 물 없는 샤워기

“분명 천장에 스프링클러 헤드가 달려 있었는데, 왜 불이 번지는 동안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을까?”
최근 발생한 대형 주차장 화재 사건들의 공통된 의문점입니다. 피해 차주들은 관리 사무소의 조작 실수를 의심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주차장은 막힌 공간이라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옆 차로 불이 옮겨붙기 쉬워 화재 확산 속도가 야외보다 3배 이상 빠릅니다. 특히 ‘달리는 화약고’라 불리는 전기차 보급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소방 시설은 1990년대 가솔린차 기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과연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안전할까요?

2. 왜 안 터지나? : ‘준비작동식’ 밸브의 배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90% 이상은 동파(얼어 터짐) 방지를 위해 배관에 물을 비워두는 ‘준비작동식(Pre-action)’ 설비를 사용합니다. 이것이 화근입니다.

Flaw 1. 두 번 감지해야 물이 나온다 (지연)

항상 물이 차 있는 습식(Wet pipe) 방식과 달리, 준비작동식은 두 개의 화재 감지기(A감지기, B감지기)가 ‘교차 회로’ 방식으로 모두 작동해야만 밸브가 열려 물이 공급됩니다.

문제는 화재 초기 연기만 나거나 불길이 작을 때 감지기 하나만 작동하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두 감지기가 모두 반응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일 확률이 높습니다. 골든타임을 구조적으로 놓치기 쉬운 방식입니다.

Flaw 2. 관리자의 ‘임의 정지’ 관행

지하 주차장은 습기가 많아 감지기 오작동이 잦습니다. “오작동으로 물바다가 되면 차 물어줘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평소에 수신반(제어 장치)을 ‘정지’ 상태로 꺼두는 관리소가 많습니다. 실제 화재가 발생해도 관리자가 달려가서 수동으로 켜기 전까지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상태인 것입니다.

3. 전기차 화재: 물을 뿌려도 소용없다?

주차장 화재02

현재의 소방 기준(NFSC 103)은 주차장 스프링클러의 방수량을 분당 80리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휘발유/경유차 화재 진압용입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다릅니다.

3.1. 배터리 열폭주와 ‘하부 냉각’의 부재

전기차 화재의 핵심인 배터리 팩은 차량 하부에 위치하며, 강철 케이스로 덮여 있습니다. 천장에서 물을 뿌려봤자 차체 지붕만 적실뿐, 배터리 내부로 물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를 끄려면 분당 80리터가 아니라 최소 180리터 이상의 대용량 주수가 필요하며, 위에서 뿌리는 방식이 아니라 하부에서 물을 쏘아 올리는 ‘상향식 살수 설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현행법에는 전기차 전용 설비 규정이 전무합니다.

4. 또 다른 사각지대: ‘기계식 주차장’

좁은 공간에 차를 층층이 쌓는 기계식 주차장(주차 타워)은 화재 시 ‘거대한 굴뚝’이 됩니다.

  • 내부 진입 불가: 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소방관이 내부로 진입해 불을 끌 수가 없습니다.
  • 설비 미비: 법적으로 20대 미만 수용 가능한 소규모 기계식 주차장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습니다. 그냥 소화기만 두면 끝입니다. 도심 빌라나 오피스텔의 기계식 주차장이 화재에 가장 취약한 이유입니다.

5. [대안과 해법] 법을 바꾸고 장비를 바꿔야 산다

언제까지 운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SOLUTION 1. ‘습식’ 스프링클러 확대 및 배관 보온

오작동이나 지연이 없는 ‘습식(배관에 물이 차 있는 상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동파가 걱정된다면 배관에 열선을 감거나 보온재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밸브를 잠가두는 방식은 안 됩니다. 신축 아파트는 설계 단계부터 지하 주차장 보온을 강화해 습식 설비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SOLUTION 2. 전기차 충전 구역 ‘전용 소화 설비’ 의무화

모든 주차면에 고성능 설비를 갖출 순 없어도, 전기차 충전 구역만큼은 달라야 합니다. 바닥에서 물이 올라오는 ‘상향식 살수 장치’나, 화재 감지 시 자동으로 불연성 덮개를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 소화포’ 비치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6. 에필로그: 안전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

스프링클러 헤드 하나를 ‘조기 반응형’으로 바꾸는 데 몇천 원, 배관을 습식으로 유지하는 관리비 몇만 원. 이 비용을 아끼려다 수백 대의 차량과 건물이 전소되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소방 시설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내 차가 전기차라면,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 어떤 방식의 소화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한 번쯤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관심이 가장 큰 인화물질입니다.

[부록] 우리 아파트 주차장 안전 체크리스트


  • 설비 확인: 천장에 스프링클러 헤드가 있는지, 빨간색 배관 밸브가 ‘열림’ 상태인지 눈으로 확인

  • 충전소 위치: 전기차 충전소가 출입구 근처(지상으로 이동 용이)나 외벽 쪽에 배치되어 있는지 확인

  • 전용 장비: 전기차 충전 구역 근처에 ‘D급 소화기(금속 화재용)’나 ‘질식 소화포’가 비치되어 있는지 관리소에 문의

  • 주차 습관: 전기차는 가급적 CCTV가 잘 보이는 곳, 스프링클러 헤드 바로 아래 주차 권장

최신 자동차 정보, 사고,보험등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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