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스마트폰이 된 자동차, 편리함 속에 감춰진 데이터 유출 공포
1. 프롤로그: 한밤중의 유령 주행
새벽 2시, 잠자리에 든 당신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차량 도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시동이 걸렸습니다.] 잘못 온 알림이겠거니 하고 창밖을 내다본 순간, 당신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의 헤드라이트가 켜지더니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자동차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바퀴 달린 컴퓨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블루링크, 유보(UVO), 커넥트 등 우리가 애용하는 원격 제어 서비스가 해커들의 놀이터가 된다면? 당신의 프라이버시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2. 보안의 구멍: 해커는 어떻게 내 차에 침투하나?
“자동차 보안이 은행 보안만큼 철저할까요?” 보안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IT 기업이 아니기에 보안 업데이트 속도가 느리고 취약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앱으로 보내는 “문 열어”라는 명령은 제조사의 중앙 서버를 거쳐 차량으로 전송됩니다. 화이트 해커 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자동차 제조사의 서버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보안이 허술해, 차대번호(VIN)만 알면 서버를 속여 타인의 차량 제어 권한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영화처럼 노트북 하나로 수백 대의 차 문을 동시에 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마트폰을 차 키처럼 쓰는 ‘디지털 키’ 기능은 편리하지만 위험합니다. 악성 코드가 심어진 문자를 클릭하거나(스미싱),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스마트폰이 해킹당하면 디지털 키 정보가 고스란히 해커에게 넘어갑니다. 실물 키를 훔칠 필요도 없이, 해커는 복제된 디지털 키로 유유히 차를 몰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커넥티드 카는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압니다. 실시간 위치, 주행 경로, 즐겨찾는 장소, 통화 목록, 심지어 차내 대화 내용(음성 인식)까지 서버에 기록됩니다. 이 데이터가 유출된다면? 나의 이동 동선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끔찍한 스토킹 범죄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3. 중고차 거래의 맹점: “내 정보가 팔려갔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보안 사고는 의외로 ‘중고차 매매’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차를 팔 때 내비게이션의 ‘최근 목적지’나 블루투스 연결 목록을 삭제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더 심각한 건 커넥티드 서비스 계정입니다. 전 차주가 서비스 해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차는 이미 팔렸는데도 전 차주의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 위치가 조회되고 문까지 열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몇 달간 지속되기도 합니다. 새 차주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운행하는 셈입니다.
4. [방어 전략] 내 차를 요새로 만드는 보안 수칙
제조사의 보안 패치를 기다리기엔 불안합니다.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하지만 강력한 방어책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현대, 기아 등 대부분의 커넥티드 서비스 앱은 로그인 시 2단계 인증(비밀번호 + 생체인증/문자)을 지원합니다. 귀찮다고 꺼두지 마세요. 해커가 비밀번호를 알아내도 내 지문이나 핸드폰이 없으면 접속할 수 없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대리운전이나 발렛파킹을 맡길 때는 반드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발렛 모드’를 켜세요. 개인 정보(주소록, 최근 목적지)가 화면에 뜨지 않도록 잠그고, 타인이 내 차를 어떻게 운행했는지(최고 속도, 운행 시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팔 때 초기화하시죠? 자동차도 똑같습니다. 차를 넘기기 전 설정 메뉴에서 [시스템 초기화]를 눌러 모든 데이터를 지우세요. 그리고 반드시 고객센터에 전화해 커넥티드 서비스 가입을 ‘해지’해야 완벽하게 연결이 끊깁니다.
5. 에필로그: 편리함에는 보안이라는 비용이 따른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Hyper-connected World)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줬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보안 위협을 안겨주었습니다. 자동차 해킹은 단순히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 물리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입니다.
“내 차는 내가 지킨다”는 보안 의식이 필요합니다.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고, 불필요한 권한은 차단하며, 내 차가 보내는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세요. 안전한 드라이빙은 운전대를 잡기 전, 앱을 켜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부록] 내 차 보안 등급 자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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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관리: 차량 제어 앱 비밀번호를 생일이나 전화번호 등 쉬운 것으로 설정하지 않았나요? - ✔
앱 권한 설정: 스마트폰 앱 권한 설정에서 ‘항상 위치 허용’ 대신 ‘앱 사용 중에만 허용’으로 변경했나요? - ✔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내비게이션 및 차량 시스템 OTA(무선 업데이트)를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고 있나요? - ✔
디지털 키 공유 확인: 나도 모르게 가족이나 지인에게 디지털 키 권한을 공유해둔 상태는 아닌지 목록을 점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