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보험사만 알고 당신은 모르는 ‘격락손해’ 약관의 20% 장벽
1. 프롤로그: 멀쩡히 고쳤는데 500만 원 손해?
K씨는 신호 대기 중 후방 추돌 사고를 당했습니다. 출고 6개월 된 5,000만 원짜리 SUV의 뒷범퍼와 트렁크 리드가 찌그러졌고, 수리비로 300만 원이 나왔습니다. 상대방 과실 100%라 수리비는 전액 보상받았지만, 문제는 그 후였습니다.
“사장님, 이 차는 이제 ‘사고 이력’이 남아서 나중에 파실 때 감가가 심해요. 최소 500만 원은 깎일 겁니다.” 중고차 딜러의 말에 K씨는 보험사에 ‘시세 하락분’ 보상을 요구했지만, “수리비가 차량 가액의 20%를 넘지 않아 지급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차는 고쳤지만 내 자산 가치는 증발해버린 상황. 보험사는 왜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들이대는 걸까요?
2. 보험사의 철벽 방어: ‘20% 룰’의 함정
보험사가 보상을 거절하는 근거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의 ‘시세 하락 손해(격락손해)’ 지급 기준 때문입니다. 이 기준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가장 높은 장벽입니다. 5,000만 원짜리 차라면 수리비가 무려 1,000만 원 이상 나와야 보상 대상이 됩니다. 엔진이 밀려 들어갈 정도의 대파 사고가 아니면 충족하기 힘든 조건입니다. 뼈대(프레임)가 다쳐서 시세가 폭락해도, 수리비가 900만 원이면 약관상 보상액은 ‘0원’입니다.
차량 연식이 5년을 초과하면 아무리 큰 사고가 나도 시세 하락 손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5년 1개월 된 차는 보상을 못 받습니다. 심지어 보상 금액도 짭니다.
- 출고 1년 이하: 수리비의 20%
- 출고 1~2년: 수리비의 15%
- 출고 2~5년: 수리비의 10%
실제 중고차 시장에서의 감가율은 수리비의 30~50%에 달하는데, 보험사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으로 퉁치려 합니다.
3. 법원은 다르게 말한다: “약관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럼 약관 때문에 포기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대법원은 2019년 “보험 약관의 기준은 보험사의 내부 기준일 뿐, 피해자의 실제 손해를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의 획기적인 판결(2016다248806)을 내렸습니다.
즉, 수리비가 차량가액의 20%를 넘지 않더라도, 혹은 출고 5년이 지났더라도 ‘주요 골격 부위(프레임, 휠하우스 등)의 손상으로 인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거나 가치 하락이 명백한 경우’에는 격락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이 판결 이후 소송을 통해 보상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4. [실전 가이드] 거절당한 보상금 받아내는 3단계
보험사 담당자와 말싸움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들은 “약관 규정상 안 됩니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입니다. 체계적인 절차로 압박해야 합니다.
내 주장을 입증하려면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공인된 차량기술법인이나 자동차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하여 ‘격락손해 평가서(시세 하락 감정서)’를 발급받으세요. 비용은 10~30만 원 정도 들지만, 승소 시 이 비용까지 청구할 수 있습니다.
평가서를 근거로 보험사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그래도 거절하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으세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실제 발생한 시세 하락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면, 보험사도 소송으로 가기 전 합의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100% 지급보다는 절충안을 제시할 확률이 높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변호사 없이 혼자서도 대법원 전자소송 사이트를 통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청구 금액이 3,000만 원 이하라면 소액사건심판으로 분류되어 절차가 빠르고 간편합니다. 승소율이 꽤 높은 편이며, 최근에는 이를 대행해 주는 법률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5. 에필로그: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보험 약관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보험사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보수적인 약관을 고수하지만, 법은 피해자의 ‘완전한 손해 배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단순 긁힘 사고라면 감수할 수 있겠지만, 뼈대가 다친 큰 사고라면 반드시 격락손해를 따져봐야 합니다. 500만 원, 1,000만 원은 포기하기엔 너무 큰 돈입니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적극적으로 두드리는 자만이 정당한 보상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부록] 격락손해 소송 승소 확률 자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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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골격 손상: 단순 범퍼 교환이 아닌, 휠하우스, 필러, 프레임 등을 수리/용접했는가? (승소 확률 매우 높음) - ✔
연식 및 차종: 출고 5년 이내의 국산 인기 차종이나 고가 수입차인가? (감가폭이 커서 유리함) - ✔
수리비 규모: 차량가액의 20%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절대적인 수리비 금액이 큰가? (예: 200만 원 이상) - ✔
사고 이력: 이번 사고 이전에 무사고 차량이었는가? (기존 사고 이력이 많으면 감가 인정액이 줄어들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