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대포차로 팔려간 내 차, 그리고 인감증명서의 함정
1. 프롤로그: 친절했던 김 실장의 배신
급하게 해외 발령이 난 직장인 P씨는 타던 차를 중고로 처분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습니다. 곧바로 연락 온 ‘매입 딜러 김 실장’은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시세보다 50만 원을 더 쳐주겠다는 말, 그리고 “바쁘실 텐데 서류랑 차 키만 주시면 명의 이전해서 등록증 사진 찍어 보내드리겠다”는 배려에 P씨는 의심 없이 인감증명서와 차를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김 실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날아온 것은 과속 딱지였습니다. 알고 보니 김 실장은 정식 딜러가 아니었고, P씨의 차는 명의 이전도 되지 않은 채 소위 ‘대포차’가 되어 전국을 누비고 있었습니다. 차는 사라졌는데 세금과 과태료는 계속 내야 하는 지옥 같은 상황. P씨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2. 그들은 어떻게 훔치는가? : 사기의 3단계 메커니즘
사기꾼들은 법적인 절차의 복잡함을 이용해 피해자의 판단력을 흐립니다. 그들의 수법은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합니다.
가장 먼저 시세보다 높은 매입가를 제시해 욕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직접 구청에 가면 대기 시간이 길다”, “복잡한 서류 작업을 무료로 대행해 주겠다”며 피해자의 귀차니즘을 공략합니다. 번듯한 명함을 내밀지만, 대부분 도용했거나 유령 회사의 명함입니다.
자동차 매도용 인감증명서는 차량의 소유권을 넘기는 ‘만능키’입니다. 사기꾼은 “매수자 인적 사항은 제가 가서 적을 테니 공란으로 비워달라”고 요구하거나, 대리 발급 위임장을 써달라고 합니다. 매수자 정보가 비어있는 인감증명서를 넘겨주는 순간, 사기꾼은 그 차를 누구에게든 마음대로 팔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차와 서류를 건네받은 사기꾼은 잠적합니다. 차량은 즉시 중간책을 통해 현금화되거나, 번호판이 위조되어 대포차 시장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심지어 해외로 밀수출되는 경우도 있어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명의는 여전히 피해자 앞으로 되어 있기에, 이후 발생하는 뺑소니 사고, 과태료, 세금 체납의 책임은 모두 피해자가 져야 합니다.
3. 법적 대응의 한계: “이건 민사 사안입니다?”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면 되잖아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제 발로 차 키와 서류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를 절도가 아닌 ‘횡령’이나 ‘사기’ 사건으로 접수합니다. 문제는 사기 사건은 수사 기간이 길고, 차량을 즉시 수배 내리기가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더 억울한 것은 ‘운행 정지 명령’ 신청입니다. 차량이 대포차로 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구청에 운행 정지를 신청할 수 있지만, 차를 되찾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민사 소송을 통해 차량 반환 청구를 해야 하는데, 사기꾼이 잡혀도 “차는 이미 팔았고 돈은 다 썼다”고 배째라 식으로 나오면 피해 구제는 요원해집니다.
4. [철벽 방어] 내 차와 서류를 지키는 3원칙
사기는 당한 뒤에 수습하려 하면 늦습니다. 거래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만 지켜도 사기의 99%는 막을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차량 등록 사업소에서 만나 함께 이전하는 것’입니다. 구매자와 함께 창구에 가서 명의가 넘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잔금을 받으세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수천만 원짜리 재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인감증명서를 뗄 때, 반드시 매수자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를 기재해서 발급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해당 매수자 외에는 누구도 그 서류를 이용해 차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정보는 나중에 적을게요”라고 하는 사람은 100% 사기꾼입니다.
딜러와 거래한다면 명함만 믿지 마세요. ‘자동차 매매 사원증(종사원증)’을 보여달라고 하고, 사진 속 인물과 실제 인물이 같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차량 대금은 반드시 딜러 본인 명의나 상사 법인 명의 계좌로 받아야 합니다. “세금 문제 때문에 가족 계좌로 보내달라”는 핑계는 전형적인 사기 멘트입니다.
5. 에필로그: 서류는 차 키보다 무겁다
우리는 차 키를 잃어버리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지만, 서류를 넘겨주는 것에는 의외로 관대합니다. 하지만 자동차 거래에서 인감증명서와 양도증명서는 차 키 이상의 권한을 갖습니다.
“편하게 해 드립니다”라는 말은 “당신을 속이기 편하게 해달라”는 말과 같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손으로 도장을 찍는 것. 그것이 흉흉한 세상에서 내 재산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부록] 자동차 매도 시 필수 확인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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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 확인: ‘자동차 매도용 인감증명서’ 발급 시 매수자 인적사항(성명, 주민번호, 주소) 필수 기재 - ✔
입금 확인: 차량 인도 전 차량 대금 100% 입금 확인 (계약금만 받고 차 넘기기 절대 금지) - ✔
계약서 작성: 관인 계약서 사용 및 특약 사항(명의 이전 기한, 사고 책임 등) 꼼꼼히 기재 - ✔
자동차 365 조회: 거래 종결 후 국토부 ‘자동차 365’ 사이트에서 명의 이전 완료 여부 최종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