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자율주행’이라는 달콤한 이름의 함정, 그리고 운전자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의 무게
1. 프롤로그: 아이언맨의 꿈, 그리고 현실의 비극
꽉 막힌 퇴근길 올림픽대로 위에서, 혹은 끝도 없이 펼쳐진 고속도로 위에서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편안하게 넷플릭스를 보거나 부족한 잠을 청하는 상상.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꿈을 현실로 가장 가깝게 끌어당긴 기업이 바로 테슬라(Tesla)입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현대판 토니 스타크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CEO는 수년 전부터 “곧 테슬라 차량이 스스로 운전해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것”이라며,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오토파일럿(Autopilot)과 FSD(Full Self-Driving)가 통계적으로 훨씬 안전하다”고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비전은 전 세계 수많은 소비자를 열광시켰고, 테슬라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미래 기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오토파일럿(Autopilot)’. 이름부터가 항공기의 자동조종장치를 연상케 합니다. 마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차가 알아서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제어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죠. 하지만 현실의 도로는 맑은 하늘길과 달랐습니다. 오토파일럿을 켜고 달리던 모델 S가 트레일러의 하얀 옆면을 하늘로 착각해 그대로 돌진하여 운전자가 참수당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고, 모델 3가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거나, 갓길에 정차된 소방차와 경찰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추돌하는 사고들이 연이어 보도되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심각한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테슬라가 ‘자율주행’이라는 과장된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기만했고, 미완성된 베타 테스트 수준의 기술을 도로 위에 풀어놓아 사람들을 실험 쥐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테슬라를 상대로 기나긴 법적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반면 테슬라는 “우리는 운전자에게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핸들을 잡으라고 경고했다”며 맞섰습니다.
이 재판은 단순히 한 자동차 회사의 과실 여부를 따지는 것을 넘어, 다가올 인공지능(AI) 시대의 법적 책임 기준을 세우는 세기의 재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알고리즘의 판단 오류로 인한 사고는 제조사의 제조물 책임(PL)인가, 아니면 이를 감독하지 못한 인간의 과실인가?” 기술 발전과 법적 윤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이 지점에서, 최근 미국 법원은 예상을 깨고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 판결의 내막을 들여다봅니다.
2. 법원의 판결: “기술은 죄가 없다, 감시하지 않은 인간이 유죄”
2.1. 테슬라의 연승 행진, 구체적인 사례들
2023년부터 2024년 초까지 이어진 주요 오토파일럿 사망 및 상해 사고 소송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 배심원단은 잇따라 테슬라의 책임이 없다(Not Liable)는 평결을 내렸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시스템이 가진 결함과 일론 머스크의 과장된 발언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감성에 호소했지만, 배심원들은 냉정하게 ‘운전자의 기본 의무’에 집중했습니다.
- 저스틴 수(Justine Hsu) 사건 (2023년 4월 판결): 2020년, 테슬라 모델 S가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 중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사고입니다. 원고인 수는 이 사고로 턱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오토파일럿의 설계 결함을 주장하며 3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사고 당시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운전자가 적절히 제동하지 않았다”며 테슬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또한 “오토파일럿은 도심 주행용이 아니라는 매뉴얼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 마이카 리(Micah Lee) 사망 사고 (2023년 10월 판결): 2019년, 모델 3가 시속 105km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도로를 이탈해 야자수를 들이받고 화재가 발생, 운전자가 사망하고 동승자들이 중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이는 오토파일럿 관련 첫 사망 사고 재판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유가족 측은 “제조 결함”을 주장했지만, 테슬라 측은 “운전자가 사고 전 소량의 알코올을 섭취했고, 사고 직전까지 핸들에 힘을 주지 않았다(조향 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로그 기록으로 입증했습니다. 결국 12명의 배심원 중 9명이 테슬라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2. 법정 공방의 핵심: ‘소비자 기대’ vs ‘제조물 책임’
재판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맞붙은 논리는 ‘소비자 기대 기준(Consumer Expectation Test)’이었습니다. 원고 측은 “소비자들은 ‘오토파일럿’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차가 알아서 안전하게 운전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따라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고가 났다면 설계 결함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 측 변호인단은 이를 기술적으로 반박했습니다. “테슬라는 차량을 판매할 때, 그리고 오토파일럿 기능을 활성화할 때마다 화면에 경고 문구를 띄운다. ‘현재 기능은 베타 버전이며, 운전자는 항상 핸들을 잡고 도로를 주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소비자가 이를 읽지 않았거나 무시한 것은 제조사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논리입니다. 즉, “우리는 완벽한 자율주행차를 판 것이 아니라, 주의 깊은 운전자를 돕는 ‘주행 보조 장치(ADAS)’를 팔았다”는 것이 테슬라의 핵심 방어 전략이었고,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3. ‘레벨 2’의 딜레마: 이름은 자율주행, 현실은 보조바퀴

3.1. 자율주행 단계의 불편한 진실
많은 운전자가 혼동하는 것이 바로 자율주행의 ‘레벨(Level)’입니다.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SAE)는 자율주행 기술을 0단계부터 5단계까지로 분류합니다.
- 레벨 0 ~ 1 (비자동 ~ 운전자 보조): 일반적인 크루즈 컨트롤. 발만 편하거나 손만 편한 단계.
- 레벨 2 (부분 자동화): 현재의 테슬라 오토파일럿, 현대차 HDA2 등이 해당됩니다. 시스템이 조향과 가감속을 동시에 해주지만, 주변 상황 주시와 돌발 상황 대처의 책임은 100%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법적으로 운전자는 잠시도 눈을 떼선 안 됩니다.
- 레벨 3 (조건부 자동화): 고속도로 등 특정 구간에서 핸들에서 손을 떼고 딴짓(영상 시청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위급 시에만 개입합니다. 사고 시 제조사가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벤츠, 혼다 등 일부 상용화 시작)
- 레벨 4 ~ 5 (고도/완전 자동화): 운전자가 잠을 자거나 아예 운전석이 없는 단계.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입니다.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조차 아직은 ‘레벨 2’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름에 ‘Self-Driving’이 들어가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소비자와 제조사 간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기술은 너무나 매끄럽게 작동하여 마치 레벨 3~4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 “사실은 레벨 2였다”며 약관을 들이미는 형국인 셈입니다.
3.2. 휴먼 에러: ‘자동화 태만(Automation Complacency)’
인간 공학 전문가들은 이를 ‘자동화 태만(Automation Complacency)’이라고 부릅니다. 기계가 99번 잘 작동하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기계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긴장감을 늦추게 됩니다. 고속도로에서 오토파일럿이 차선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해 주면, 운전자는 5분, 10분이 지나면서 서서히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문제는 나머지 1번의 오류 상황입니다. AI가 트럭을 하늘로 인식하거나, 역광에 눈이 멀어버리는 그 0.1초의 순간, 이미 딴짓을 하고 있던 운전자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율주행 모드에서 딴짓을 하던 운전자가 돌발 상황을 인지하고 제어권을 다시 가져오는 데는 평균 3~5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에서 3초는 축구장 한 바퀴를 눈 감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고는 피할 수 없게 됩니다.
4. [핵심] 오토파일럿, 스마트하게 쓰는 ‘생존 가이드’
그렇다고 이 편리한 기능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오토파일럿은 장거리 운전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훌륭한 도구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도구’를 지배하는 주체로서 올바른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다음은 수많은 사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도출한 ‘오토파일럿 생존 수칙’입니다.
테슬라 오너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입니다. 고속도로를 잘 달리던 차가 전방에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현상입니다. 주로 고가도로 밑의 그림자나 표지판을 장애물로 오인해서 발생합니다.
- 위험성: 뒤따라오던 차량이 반응하지 못하고 추돌할 위험이 매우 큽니다.
- 실전 대처법: 오토파일럿 주행 중이라도 오른발은 항상 가속 페달 위에 가볍게 얹어두세요(Hovering). 차가 울컥하며 감속하려는 느낌이 들 때, 즉시 가속 페달을 밟아주면 급제동이 취소되고 속도가 유지됩니다. 이 ‘발 컨트롤’ 하나가 뒤차와의 사고를 막습니다.
테슬라는 레이더(Radar)를 제거하고 카메라(Vision)만으로 주행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인간의 눈과 비슷해서, 강한 역광이나 안개 상황에서 취약합니다. 특히 하얀색 대형 트럭의 옆면을 밝은 하늘이나 구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또한, 고속으로 주행 중 전방에 ‘완전히 정지해 있는’ 물체(고장 차량, 경찰차 등)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 실전 대처법: 전방 시야가 제한되는 언덕길, 급커브 구간, 또는 고속도로 합류 구간에서 하얀색 탑차나 대형 트럭이 보인다면 즉시 오토파일럿을 해제하거나 핸들을 꽉 잡으세요. AI의 판단을 기다리지 말고 미리 개입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나는 분명 전방을 보고 있었다”, “오토파일럿이 멋대로 핸들을 꺾었다”고 주장해도 소용없습니다. 테슬라 차량에는 비행기의 블랙박스보다 더 정밀한 EDR(Event Data Recorder)과 서버 로그가 기록됩니다.
- 무엇이 기록되나?: 운전자가 핸들에 가한 힘(토크), 가속/브레이크 페달 조작 여부, 시트 착석 여부, 안전벨트 체결 여부, 오토파일럿 경고음 발생 시점 등 모든 것이 0.1초 단위로 저장됩니다.
- 교훈: 법정에서 이 로그는 테슬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운전자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거가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운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경고음이 울리면 즉시 핸들을 잡고, 딴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데이터로 남겨야 합니다.
5. 에필로그: 운전대는 아직 인간의 것입니다
기술은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아직 불완전합니다. 법원은 일관되게 “현재의 AI는 운전기사가 아니라,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이나 크루즈 컨트롤일 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완전 자율주행의 미래는 분명 올 것입니다. 하지만 2025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오토파일럿은 분명 우리의 운전 생활을 혁신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도구입니다. 하지만 내 목숨과 사랑하는 가족의 안전을 100% 맡기기엔 아직 이릅니다. ‘보조는 보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기계가 운전하는 동안에도 언제든 내가 개입해 상황을 통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이 스마트카 시대를 살아가는 운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스마트한 태도이자 생존 전략입니다. 운전대는, 아직 당신의 것입니다.
[부록] 테슬라 오너를 위한 오토파일럿 안전 운용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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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별 해제 습관: 고속도로 진출입로(IC/JC), 도로 공사 구간, 차선이 희미한 도로, 폭우나 폭설 시에는 반드시 기능을 끄고 직접 운전하세요. - ✔
방어 운전 자세: 오토파일럿 중에도 양손은 핸들 9시/3시 방향에 가볍게 걸치고, 오른발은 브레이크/가속 페달 근처에서 대기하세요. - ✔
시각적 함정 주의: 전방에 전복된 차량, 흰색 대형 트럭, 특수 차량(소방차 등)이 보이면 AI가 인식 못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즉시 감속하세요. - ✔
동승자 교육: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 차는 알아서 가니까 괜찮아”라며 과시하지 마세요. 운전자의 안이한 태도는 동승자의 불안감을 키웁니다. - ✔
업데이트 관리: 최신 OTA(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항상 유지하세요. 안전 관련 버그 수정과 AI 성능 개선이 수시로 이루어집니다.